'역사저널 그날', 제갈공명의 남만정벌···그날의 진실은?

- 제갈공명, 삼국통일의 의지를 담은 출사표···북벌 전쟁
- 제갈공명의 눈물, 읍참마속···1차 북벌 실패
- 사마의 VS 제갈공명, 지략가들의 한판 승부!

조한별 승인 2021.07.27 10:18 의견 0
사진=KBS 1TV <역사저널 그날>

[선데이타임즈=조한별 기자]이릉대전에서 참패한 촉蜀 황제 유비가 223년에 죽고 그의 아들 유선이 촉한 2대 황제 자리에 오른다. 어린 황제 유선을 보좌해 국정을 돌보게 된 제갈공명은 촉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다. 관우, 장비, 유비가 다 사망하며 위기를 맞은 촉蜀. 어려운 상황 가운데 제갈공명이 선택한 것은 바로 북벌'이었다!

227년 제갈공명은 삼국통일의 의지를 담은 출사표를 황제 유선에게 올린 후 군사를 이끌고 위魏 공격에 나서게 되고 228년 북벌 전쟁을 시작한다. <역사저널 그날> '여름방학특집 삼국지 시리즈' 마지막 시간! 제갈공명이 북벌을 감행한 이유는? 출사표에 담긴 제갈공명의 진심에 대해 알아보았다.

제갈공명이 촉의 승상으로서 북벌에 앞서 가장 먼저 개시한 군사행동은 남만을 정벌한 것!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묘사된 남만 정벌은 기이한 일화들로 가득하다.

<역사저널 그날>은 제갈공명이 목각으로 병사를 만들어 남만을 공격했다? 만두를 처음 만든 인물은 제갈공명? 맹획을 일곱 번 붙잡았지만 일곱 번 풀어주었다는데... 과연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역사적 진실일까? 등을 다루었다.

제갈공명이 이끄는 촉蜀군은 1차 북벌에서 위魏군을 상대로 승기를 잡았지만 부하 장수 마속의 실수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 책임을 물어 제갈공명은 아끼던 부하인 마속을 처형한다. 오늘날까지 유명한 ‘읍참마속’ 일화를 통해 제갈공명의 원칙주의와 그 배경이 되었던 형주학파 그리고 234년 제갈공명이 군사 10만 명을 이끌고 5차 북벌을 감행하자 위魏의 지략가 사마의가 제갈공명에 맞선다. 두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이 벌어지려는 순간, 공명과 사마의 양측 모두 의외의 전술을 구사한다. 그 전술의 내용과 배경과 공명이 사마의를 대상으로 특이한 심리전을 벌이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222년 이릉대전의 참패 이후 피폐해진 촉을 살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며 행정가로서의 진가를 발휘한 제갈공명, 위魏와 오吳도 탐냈다는 촉의 전략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역사저널 그날>은 오늘(27일) 밤 10시 방송을 통해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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