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장취재]고구려 역사의 혼(魂)...관광 상품으로 단장

조성민 승인 2019.12.03 11:58 의견 0
사진출처=인터넷언론인연대

[취재=인터넷언론인연대 모동신 기자/편집=선데이타임즈 조성민 기자]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과 한중수교 27주년이다. 두 나라는 한국전쟁(1950~1953) 당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등 수십년간 적대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 수교 이후 세계 외교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약적으로 교류 발전했다.

하지만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은 뒤로 ‘빙하기’를 맞고 있다. 반면 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북중관계는 지난해 북미 핵협상 재개를 계기로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같이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한·중수교 이후 양국은 우호관계와 함께 지속적인 경제·무역 협력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적 교류 등 상호 안정 체제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사진출처=인터넷언론인연대

또한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구려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1월 30일 중국의 지안에 위치한 장군총이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군총은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을 얻은 장수왕릉을 장군총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석조구조로 된 이 무덤은 고구려 제 20대 왕인 장수왕릉이다.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장수왕릉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방단계단식 석실무덤이며 정방형이다. 무덤 밑변의 길이는 31.58m이고, 높이는 13.1m이다. 무덤 칸은 5층 계단의 중간 부분에 있고 무덤 윗부분에는 무게가 50여 톤짜리의 큰 덮개돌을 올려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덤 위에는 향당(후) 같은 건축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무덤 변두리는 총 11개의 큰 돌들이 각 변에 세워져 있는데, 무게가 10여 톤이라 했다. 그리고 무덤의 북동쪽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배총 무덤이 있었다고 했다. 무덤의 남서쪽 방향으로 200m 지점에 제단 유적이 남아 있으며 면적은 5헥타르 정도다.

장수왕릉의 능원 설계는 완벽하며, 석조 건축 공예는 정밀하고 뛰어나서 고구려 시기 석조 건축 능묘 중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절세의 능묘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의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중국 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했기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는 ‘고구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뛰어난 예술성을 볼 수 있는 장군총 주변의 조경 공사를 마치고 관광객을 받을 수 있도록 단장했다. 

또한 중국인이 무분별하게 석조물을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실제로 이 능은 사방으로 둘러 큰 돌로 받쳐주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뒤편의 지축 돌을 훔쳐가는 일이 생겨 현재 뒷부분은 한 개만 받쳐주고 있으며, 피라미드 형태의 석조물이 균형을 잃은 모습이었다.  앞부분 또한 정면 오른편의 석조기둥에는 잉카문명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동북아 최대 강국을 만든 광개토대왕이 동방의 알렉산더 대왕이라면 장수왕의 평양성 천도, 80년의 업적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학계는 왕릉 규모로는 진시왕릉이 최대이나 묘제양식의 우수성으로는 장군총이 최고라고 평가한다. 동방의 금자탑 장수왕릉(장군총)은 집안(지안)에 남아있는 만 2천여 개의 묘지 중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능으로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어 동방의 금자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취재진은 고구려의 광대했던 영토와 국력을 상징하는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을 방문하여 융성했던 고구려 역사의 기록을 되짚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지안이라는 지명을 가진 중국의 도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바라보는 곳으로 주변에 광개토왕진흥비와 호태왕비 능, 환도산성, 장군총 등 우리 고구려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고구려의 역사를 발굴하고 단장하며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깃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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