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칼럼

240번 버스 기사 사건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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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최고관리자 기자작성일 17-09-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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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귀가 팔랑이고 마음이 흔들거리는 사람을 가리켜서 ‘귀가 얇다’라고 한다. 마음이 착하다고 할 수 있지만,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래서 처신이 가볍고 쉽게 속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이 아니고 집단적으로 일어날 경우, 예상치 못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게 된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생각과 판단’조차 ‘묻어가는 방식’으로 타인의 의도대로 팔랑거린다면 큰일이다.
 
  최근에 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240번 버스 기사를 신고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된 사례가 있다. 아마도 버스에 함께 탔던 승객이 올린 글로 추정되는데 글 내용은 대강 이렇다. "오후 6시20분 240번 버스에서 3~4살 가량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렸지만, 아이 엄마는 승객이 많아 미처 내리지 못했다. 엄마와 승객들이 '아이가 혼자 내렸다' 외쳤지만 버스 기사는 무시하고 달렸고 다음 정거장에서야 문을 열어줬다. 심지어 울면서 아이를 찾으러 가는 아이 엄마에게 버스 기사가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 아이는 3-4세가 아니라 7세였다고 하니,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였다 또한, 처음 글을 올린 이도 오해한 부분이 있어서, 버스기사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 버스기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급기야 버스기사 딸이 나서서 "우리 아버지 그런 분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까지 올렸는데, 이 모든 일이 상당히 짧은 시간에 진행되었다. 마치 실시간으로 중계라도 하는 듯이 이런 저런 흥분한 목소리를 담은 글들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던 것이다. 문제는 흥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240번 버스 안에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우리가 즐겨 썼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가본 사람을 이긴다.’ 즉 ‘서울 안 가본 사람’의 무기는 ‘무조건 우기기’인데, 이것을 당할 재주가 없다는 거다. 사실과 논리보다 우기기가 통했고,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꺼내기 싫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과거 광우병 소동 때 유치원 정도의 어린아이가 ‘미국 소고기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쓴 피켓을 들고 있었던 장면을 기억한다. 자신의 소신을 강조하기 위해 어린아이 손에 피켓을 들게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아이도 나름 인격이 있는 것이고, 자신이 뭘 들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갖는 법이다.
 
  더 큰 우리 사회의 문제는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를 빠르게 퍼 나르는 입과 손’이다. 진실규명이라는 양의 탈을 뒤집어쓰고, 타인의 감정에 분노를 촉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도 있다. 이번 경우에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버스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입수해서 분석하고, 현장에 있었던 승객들을 면담하는 일이었다. 최소한의 이런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퍼져 나간 글에 의해, 버스기사는 천하의 몹쓸 인간으로 여론 재판을 받았다.
 
  버스 기사의 딸이 올린, ‘우리 아빠는 그런 분 아니다’라는 글을 쓴 심정이 만져진다. "증거보다 소문"에 휘둘리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런 이면에는 정치하는 자들과 국가에 대한 최하의 신뢰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도리어 소문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정반대의 현상으로 간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격이다.
 
  ‘빨리 빨리’라는 급한 성격이 경제발전을 이만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이제는 ‘조금 느리게’ 또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행동해도 될 정도의 국가가 되었다. 압축성장과 속도전이라는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생긴 부작용을 이제 고쳐야 한다. 밥 먹는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커피도 너무 빠르게 마신다.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세계 1위 국가도 우리나라이다.
 
  가끔은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잡기를 권해본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느림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되면 손과 입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게 된다. 깊은 학식과 인격을 갖춘 분에게서 ‘무조건 우기기’와 같은 무례함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역지사지라는 오래된 사자성어가 있다. 즉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는 것인데, 참 간단하고도 놀라운 지혜가 담긴 말이다. 내 입과 손을 통해 퍼져나가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생각해 봐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권 영 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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