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칼럼

[컬럼]다수가 언제나 정의로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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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최고관리자 기자작성일 18-01-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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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공업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참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잘 아는 친구 한명이 1학년을 멀쩡히 다니다가, 5월 달 쯤 신체검사를 하던 날 자신이 ‘적록 색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입학시험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당시는 모든 분야가 허술하고 엉성했기에, ‘적록 색맹’이면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것조차 잘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색을 분별하는 정도를 더욱 세밀하게 구별하여 ‘색각이상’ 혹은 ‘색약’ 정도인 경우 이공계에 진학할 수 있도록 문이 넓어졌다. 결국 그 친구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떠나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겨 갔다. ‘적록 색맹’이란 말 그대로 적색과 녹색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심하게 비유하자면 빨간색 신호등을 보고, 멈추어야 하는데 그냥 차를 몰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미꽃을 보면서 다수의 사람들은 붉다고 하는데, 몇 사람은 붉은 색이 아니라고 우기는 경험을 했다면 어떨까 ? 만약 10명 중 7명은 붉은 장미를 연초록색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3명만 붉은 색이라고 할 경우 어떤 결말이 올까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실제로 붉은 장미라고 해도 연초록색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정착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나는 미국 국민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힐러리를 지지하기 때문도 아니다. 또한 위대한 철학자가 많았으며,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그렇게 열렬히 지지하여 파시즘의 열풍을 일으킨 것과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우(愚)를 저지른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우리도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면, 소리치며 외치는 대중들에 섞여서 동조했을지 알 수 없다.

 

 심리학자 애쉬(Asch, S.)의 동조실험을 인용하자면, ‘혼자일 경우 99%를 기록하던 정답률이 집단 상황에서는 63%로 떨어진다.’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누가 봐도 3번이 답인 간단한 문제를 9명의 대학생에게 물었다.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한명이고 나머지 8명은 실험을 위해 참여한 연구원들이었다. 교수가 질문을 하자, 첫 번째 응답자는 당연히 3번이라고 했고, 두 번째 응답자도 3번이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응답자는 일부로 1번이라고 말하도록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러자 피실험자로 참여한 사람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누가 봐도 3번이 정답인데, 1번이라고 답한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후 4번째, 5번째 사람도 계속해서 1번이라고 하자 끝에서 3번째였던 피실험자의 답변은 일관되지 못했다. 애쉬는 여러 차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단순한 실험을 한 결과 정답률이 63%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나 역시 과거 교육방송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PD와 방송기술자들의 위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잘 볼 수 있었다. 방송사는 국민의 세금이 엄청나게 투입되는 곳이고, 방송사 직원들의 급여와 무형의 권력(?)은 어떤 대기업 직원들과 비교할 수 없다. 파업의 명분을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10년 이상 그런 집단과 일해 본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걱정이 앞선다. 향후, 언론의 힘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권력의 중심부로 쳐들어갈 수도 있다. 국민의 방송이 될지, 노조의 방송이 될지는 그들이 곧 보여줄 것이다.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책임이 급속하게 분산되기 때문에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윤리관, 가치관이 쉽게 무너진다. 겉으로 그럴 듯하게 내세우는 구호와 내면에서 진짜 얻고자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수가 정의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지혜가 모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수가 똘똘 뭉쳐 특정한 목적을 얻고자 할 때, 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이 공동체 모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워진다. 견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권력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오랜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소위 귀족 노조로 불리는 현대자동차 노조와 기아자동차 노조의 투쟁을 보면서 더욱 걱정과 우려가 앞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힘도 돈도 권력도 없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 단순 계약직과 민초들은 고스란히 희생양이 되고 고통을 겪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행위가 정치 쪽으로 옮겨가면 그 폐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야 바람직하지만, 좋아하는 스타에게 열광하는 청소년들의 지지와는 결이 달라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의 시민 사회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정치인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지키는 비판적 지지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전제가 무너질 때,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 현상이 ‘암 덩어리’처럼 퍼져 나가게 된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보면, 20세기 초 조선에는 ‘천국이 있었고, 악마가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있었는가 하면, ‘백백교’라는 종교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백교도 동학처럼 ‘민족을 내세우고, 후천개벽’을 주장했지만, 민족은 듣기 좋은 구호였고 개벽대신 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백백교의 주문만 외우면, ‘돈도 벌고 재산을 바치면 새 세상에서 벼슬을 준다.’라는 단순한 말에 엄청난 농민들이 현혹되어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숫자가 적을 때는 ‘저렇게 유치한 교리에 누가 동조할까?’라고 하지만, 숫자가 많아지고 엄청난 집단으로 성장하면 ‘정답율이 급속히 떨어진다.’라는 애쉬의 동조 이론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다수가 항상 선(善)이 아니었다는 것을 박근혜정부에서 경험했다면, 문재인정부에서도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저건 아닌데?’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옆 사람에게 물어 본다. 저렇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라고... 나 혼자 ‘적록 색맹’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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