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칼럼

좋은 정책은 책상머리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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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최고관리자 기자작성일 18-02-1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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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출 윤리위원장>
 
종군기자로 193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명한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는 ‘왜 우리는 당신만큼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지 못하는가?’라고 묻는 사진기자들에게 ‘당신이 좋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총탄이 날라 다니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종군기자들 입장에서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대한 사진은 피사체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갈 때 찍을 수 있듯이, 어떤 정책이 국민들을 감동시키려면 그 문제 속에 충분히 다가가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정책은 매우 고무적이고 환영할 만한 공약이었다.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입을 모아 약속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2020년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 정책의 중대한 오류라고 지적하고 싶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최저임금인상이라고 하는 사안은 대·내외적인 수많은 변수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취되어야 할 목표이다. 이런 예민한 정책을 시기까지 적시하여 발표한 것은 망원렌즈로 전쟁터를 찍은 사진과 같다. 총탄이 두려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찍은 사진이 퓰리처상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서민들의 삶속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아마추어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전쟁터는 삶과 죽음이 찰나적으로 일어나는 곳이다. 경제정책이 이루어지는 현장도 전쟁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고 싶지 않아도 피하지 말아야 하고, 듣기 싫은 말도 충분히 듣는 절차를 거치면서 정책을 다듬어야 한다. 이런 위험을 통과하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그럴 듯하게 만든 정책으로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강북의 어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이 ‘커피 한잔 값만 더 부담하면 경비원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라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즉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하지만, 서로 서로 조금씩 부담하면 경비원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이분도 간과한 것이 있으니, 당신 아파트에서 관리비를 미납하는 세대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선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담을 져야 하는 대상이 대기업의 경영자만이 아니라 서민아파트의 영세민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경우, 통장에 잔고가 없어서 관리비가 미납되는 세대수가 전체의 6-7% 정도라고 한다. 경비원이 약자라면, 통장에 돈이 없어서 미납할 수밖에 없는 세대주 역시 경제적으로 약자이다. 돈이 없어서 관리비가 미납되는 입주민에게 ‘커피 한잔 값만 더 부담하면 된다.’라고 말은 또 다른 비수가 되어 상처를 낼 수 있다. 3,4천원의 가치를 ‘커피 한잔 값’이라고 너무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설령 올해는 경비원의 숫자를 줄이지 않는다 해도, 내년에도 고용을 보장할 수 있을까 ?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의 평균연령은 65세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4대 보험을 빼고도 실수령액이 200만원을 넘기게 된다. 이분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여가 올라가는 기쁨보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올해도 최저임금이 작년처럼 올라간다면 포항의 지진보다 더 끔찍한 경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가족들이 동원되어 일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그나마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용돈이라도 벌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대학생들의 의지조차 막아버렸다. 따라서 16.4%와 같은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있으며,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통령에 집무실에 청년일자리 상황판까지 세워 놓고 장관들을 독촉했지만, 청년 실업률은 9.9%로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이 얼마나 공허한 탁상행정이었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로드맵에 수정해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청년실업뿐 아니라 50대와 60대 후반에게 주어졌던 일자리마저 사라질 위기에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의 위험성을 알리는 적절한 사자성어라고 본다. ‘지나치게 빠르고, 지나치게 급격한 인상’은 부족하게 주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따뜻한 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다양한 계층들의 삶속으로 충분히 다가가서 퓰리처상을 받을만한 탁월한 정책을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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