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신천지 교인과 우리는 뭐가 다른가?

권영출 승인 2020.03.09 09:50 의견 0
권영출 윤리위원장

[권영출 윤리위원장]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은밀하게 그러나 급격하게 교세를 확장시켜 왔던 신천지라는 사이비종교 단체가 온 국민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일반 기독교인들과 동일한 성경을 보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는 정도로 알려진 신흥종교였다. 이번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패쇄적인 행정 시스템과 독특한 예배방식 그리고 포교방법이다. 코로나19의 집단 감염과 확산에 기여한 것이 예배 형태이고, 포교 과정에서 포섭대상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길 뿐 아니라 거짓말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의식화를 진행시킨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보통 사람의 정서와 상식에 기초해 볼 때, 종교를 갖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남다른 도덕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포교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높은 윤리의식과 숭고한 도덕심을 강조하여 전도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와 천주교, 기독교 그리고 유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종교에는 공통적으로 이러한 덕목에 포함되어 있다. 성경의 출애굽기 20:16에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의 주요 키워드가 ‘정직’, ‘헌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신천지의 교인들은 진실과 정직과는 거리가 먼 ‘거짓’을 교묘하게 합리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의 포교 대상에게 처음부터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사기꾼들이나 하는 방식의 거짓과 기만을 통해 포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궤변을 교인들에게 주입시켰다고 알려졌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에게도 거짓말을 하여, 초기 차단 기회를 놓치게 했다. 그 결과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고, 막대한 국가 세금을 쏟아 부어서 검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수시로 보도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신천지 교인과 지도부는 계속 거짓말을 하여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심지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확산의 책임에서 비껴가려고 했다. 명색이 종교인인데, 어떻게 곧 드러날 거짓말을 전 국민들이 보는 언론 앞에서 말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 거짓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것인지....진실은 증발해 버리고, 도덕과 윤리가 오물로 범벅인 된 세상을 살고 있다.

신천지교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러나 요즈음 카톡 방에 들어가 보면, 버젓이 자신의 이름이 뜨는데도 거짓말로 범벅이 된 글과 영상을 당당하게 쓰는 세상이다. 페러디라는 형식을 빌려서 공인들을 저질스런 그림으로 회화화할 뿐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통해 난도질하고 저주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을 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악행들이 버젓이 통용될 수 있는 사회로 변질되어 버렸는지 한탄스러울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담대한 일을 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교양이 있는 지식인들만 활동하는 카톡방에서 실명(實名)으로 이런 행동을 할 바보는 거의 없다. 정신에 이상이 없는 한, 그런 글이나 영상을 올리면 자신의 인격이 땅에 떨어지고 그들과의 교제는 단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런 글과 영상은 특정인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방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한편이라는 유대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특정인의 지지자이며,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이면 침소봉대와 과장으로 추켜세우고, 반대편에 선 자를 비판하고 깎아내릴 수 있다면 거짓과 과장, 기만과 술책을 동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은, 동질성과 한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행위들을 통해 단일한 대오를 유지하고 동질성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신천지교인으로 있다가 탈출(?)한 분들의 인터뷰를 보니, 처음에는 포교 대상을 속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집에 가면 다정한 남편이고 사랑으로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가 특정 카톡방에서는 괴물처럼 변하는 우리사회의 이면을 보고 있다. 아마 그들도 처음에는 망설이고 가슴이 두근거렸겠지만, 카톡에 친구들의 환호가 댓글로 올라오고, ‘좋아요’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욱 담대해지는 법이다. 그들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하는 일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수준으로 타락하게 된다.
 
입법·사법·행정의 균형은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며, 이것은 국가 공동체의 합의로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언론에서 사법부의 판결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공동체의 합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명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수 천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외치면 비웃지만, 수 만 명이 외치면 박수를 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서 검찰청 앞에서 데모했던 시절이 있었다. ‘수 천 명을 죽이고 영웅이 되겠다.’는 괴물이나 하는 일을 버젓이 밝은 대낮에 했다. 숫자만 많아지면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다는 점에서 신천지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은밀하게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려고 목숨을 걸고 포교한다고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숫자를 늘리려는 신천지를 비판하기 전에, 특정 정치인을 위해 수 천, 수 만 명을 동원하려는 데 목숨을 거는 당신도 그들과 다른 게 뭔가? 그들처럼 숫자로 판결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를 획책하는 위험한 자들이다. 우리는 전체주의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기억하고 있다.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교주를 따르는 신천지 교인들과 특정 정치지도자를 그렇게 추종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언론 기사와 카톡방에 난무하는 ‘잔인한 저주’의 글을 보면서, 도대체 그렇게 저주하는 상대방과 단 10분이라도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 지 묻고 싶다. 아마도 코로나19라는 질병은 함부로 남을 저주하던 더러운 입을 닥치라고 마스크를 쓰게 만든 것 같다. 냉정한 이성을 잃고 무리지어 몰려다니던 어리석은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를 갖도록 주문하는 것 같다. 또한 남을 저주하느라 자판을 두드렸던 죄 많은 손가락을 소독하고, 깨끗이 씻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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