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광복절 날···태극기를 보면서

권영출 승인 2020.08.15 23:45 의견 0
권영출 윤리위원장

[권영출 윤리위원장]오늘은 광복절 75주년이다. 아마, 그때 그날 조선의 민초들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을 테니 온천지가 흔들렸으리라....그 후, 75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오늘 우리가 일제의 노예로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쿨한 사람은 바쁜 세상에 어떻게 그런 것까지 기억하며 사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다는 말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상기된다.

인류 역사에서 과거를 철저하게 기억하도록 수 천년 간 교육하는 민족이 있으니, 그들이 우리가 아는 이스라엘이다. 부모는 반드시 성경(토라)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고, 그 자녀는 부모에게 배운대로 다음세대에 동일하게 전한다. 그것도 수 천년 동안 나라도 없이 지독하게 핍박받으면서 이리저리 떠도는 불안전한 삶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출애굽 당시 조상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지금도 황량한 사막에 텐트를 치고 조금이나마 가까이 경험하도록 젊은이들을 인도한다. 

히틀러에 의해 수 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했지만 ‘용서하되 잊지 말라’는 명언을 남긴 나라이다. 쉽게 잊어버리는 민족은 전통과 문화가 연속되지 못한다. 결국 세월이 지나면 뿌리 없는 고목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가 처절하게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광복절 기념식을 매년마다 갖는다. 그러나 관료와 행정부의 관례적인 행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국민들의 진지한 참여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 아파트에서 태극기를 찾아보려고 나섰다.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려고 고개를 쳐들어도 눈에 띄지 않아서 충격을 받았다.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겠다고 국가적으로 법석을 떨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것을 보면서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저 정치적 이익만을 저울질하는 그들의 속성을 탓할 수 없지만, 종교와 대학 등 지성의 마지막 보루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오늘 배운 것은 ‘감동과 감동의 기억이 소멸되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이다. 우리 삶속에서 좋은 책을 읽거나, 위대한 인물을 통해 감동을 받고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해보지만 그게 오래 못 가는 것을 익히 보아왔으니까...

안중근 의사는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이라고 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의 의미가 간단하지 않음을 배웠다. 우리가 75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그 시대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런 것마저 없다면, 도저히 75년 전의 감동을 최소한이라도 경험할 길이  없다. 그렇게 독서하는 태도를 ‘몰입’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거창한 행사보다 전 국민이 광복절 날은 ‘안중근 옥중 자서전’을 한권 읽고, 저녁에 독후감을 올리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즉흥적이고 가볍고 희화적인 것을 즐기면서 서서히 염색되어 버린 듯하다. 모든 정보가 광속으로 전달되면서 ‘천천히 깊게 그리고 음미하는 것’은 진화의 경쟁에서 밀려 소멸하고 있다. ‘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최대한 즐겨라’라는 메시지가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지성, 품격’과 같은 용어가 사전 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지성인과 품격 있는 인격자가 더 이상 이 시대의 롤 모델이 아니다. 유명한 엔터테인먼트들과 부자들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며 새로운 신드롬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호모 사피엔스’라는 멋진 칭호가 쑥스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작권자 ⓒ선데이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