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왜, 괴물의 눈은 하나일까?

권영출 승인 2020.03.20 15:58 | 최종 수정 2020.03.23 10:50 의견 0
윤리위원장 권영출

[윤리위원장 권영출]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가장 위대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호메로스의 책 두 권을 제시할 것이다. 바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이다. 이 책만큼 서양 철학과 사상에 영향을 미친 책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학교인 ‘리드 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에게 호메로스의 책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선물로 보내준다고 한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고전들이 있지만, 2700여년 전에 쓰여진 호메로스이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동양의 공자께서도 ‘온고이지신 가이우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이 될 수 있다.)이라 하셨다. 리드 대학은 공자의 이 말씀을 서양식으로 신입생들에게 깊이 심어주는 것 같다. 서양의 위인들은 하나 같이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묵상하며 지혜를 얻으며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시켜왔다.

오딧세이아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향하는 도중에 양을 키우는 ‘퀴크롭스’라는 거인에 의해 동료들과 함께 동굴에 갇히게 된다. 퀴크롭스는 오딧세이아의 동료들을 잡아서 마치 양을 먹듯이 잔인하게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는 지혜를 발휘해서 퀴크롭스에게 술을 먹인 후 하나뿐인 눈을 찌르고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괴물의 눈을 하나로 설정했다는 것에는 깊은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서양 만화에서 그려지는 괴물들은 대부분 눈이 하나다. 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의 눈인 두 개인 이유는 원근감 때문이라고 한다. 눈이 하나일 경우 사물의 크기와 색깔 그리고 생김새를 구별할 수는 있지만 입체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입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일차원적이나 단편적이 아니라, 삼차원 즉 총체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학자 융에 의하면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눈을 주신 뜻을 ‘하나의 눈은 나 자신을 바로보고, 다른 한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즉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남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퀴크롭스와 같은 괴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괴물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서 산다. 즉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했다는 뜻이다. 이때 외딴 곳이란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된 사고와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상태를 표현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한쪽 편만을 바라보는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이 괴물의 힘은 거대한 몸집에서 뿜어져 나온다. 같은 생각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뭉치고 모이면 점차 거대한 괴물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퀴크롭스가 오딧세이아의 부하와 동료들을 잔인하게 뜯어 먹었던 것처럼, 자신과 다른 견해와 가치관을 가진 상대방을 먹어 치우려고 한다. 괴물의 눈에 타인은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먹어 치웠고 소멸시켜야 할 대상인 것이다. 눈이 하나면 사물과 현상을 올바로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대표적 진보학자였던 리영희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썼다. 1990년대 초반부터 그는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나 이데올로기를 걱정하면서,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균형 잡힌 인식으로 안정과 발전을 이루어나가길 원해서 쓴 책이다. 그 후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눈이 하나인 괴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 괴물에서 잡히면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호메로스는 오래 전에 이미 인간들의 이런 약점과 운명을 정확히 간파한 듯하다. 그래서 많은 현인들은 고전을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물질과 경제적 수준에서 보자면, 선진국의 입구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 정론이다. 6.25전쟁과 같은 폐허 속에서 4-50년 만에 이룩한 경제성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서량과 수준은 일본이나 미국들의 선진국과 비교할 때, 부끄러울 정도로 낫다고 한다. 책을 통해 ‘온고이지신’을 체득하며,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지 못하면 문화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료했다. 풀지 못할 문제가 없을 듯 했지만, 나이가 들고 시야가 넓어지면 세상은 우물처럼 좁은 곳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이 하나이면 바로 이 우물조차 피하지 못하고 빠져 죽는다. 과거에는 거리에만 외눈박이 거인들이 어슬렁거리더니, 이제는 사이버 세상에서도 나타나서 먹이 감을 찾아서 눈을 번뜩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고전을 읽고, 깊이 숙고하며 타인의 비극에 슬퍼하고, 기쁨에 공감하는 사회가 된다면 저런 괴물들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저작권자 ⓒ선데이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