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당개혁을 통한 정치개혁

윤석문 승인 2023.04.05 08:58 의견 0
정용상 명예교수

[정용상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명예회장(ROTC 15기)]한국 현대사를 관조해 보면 어느 한 시기도 국민대통합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분열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원래 민주주의는 좀 시끄럽고 또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라고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구조는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도 그렇고,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지라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것 같다.

특히 정치권의 비상식적 갈등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듣기만 해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하기야 특정 사안에 대해 자율적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법을 만들어야겠다며 입법부라는 곳까지 온 것은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므로 입법을 위한 험로는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공장이기도 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문제는 입법이건 감시건 간에 일정한 절차나 과정에 따른 운영이어야 하는데 실상은 맨날 싸움박질만 하고 있으니 주권자인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삼권이 분립되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어느 한쪽의 독주를 막아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순리이거늘, 이건 합종연횡도 아니고 오월동주도 아닌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정당민주주의는 찾아볼 수 없고,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되지도 않고,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이 마치 들러리 아니면 로봇, 아니면 누가 주인인지는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누구의 리모트 콘트롤에 의해 움직이는 장난감 같은 느낌을 종종 접한다. 법을 만드는 곳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고, 정해진 법(절차)이 무시당하는 무법천지의 난장판이 되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극악한 정치후진국의 모습일 따름이다.

국가개혁을 위한 과제는 산더미같이 많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에도 왕정의 때를 벗지 못한 채 법치 아닌 인치에 익숙한 정치권은 국회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등 반듯한 법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저급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여러 면에서 지적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법치에 순치되어 있지 않으므로, 법치에 바탕을 둔 공정과 상식보다는 인치에 익숙한 불공정과 몰상식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정당답지 못한 터에 패거리 정치로 전락하여 저급한 정치를 일상화하고 있으므로 그 속에서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보이지 않는가 보다. 국회개혁을 통해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국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면 국회개혁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당개혁을 통한 국회개혁의 방향을 잡아 보고자 한다.

첫째, 정당의 민주화이다.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정당법 제2조).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정당이 헌법의 정신과 정당법에 정함에 따라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정당의 설립과 운영의 전과정을 바라보면 특정의 이익집단의 부정적 모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정당의 이념이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특정인 또는 특정계파의 이익에 따라 몰려다니는 패거리집단의 모습과 흡사하며, 그 의사형성의 과정이나 의사결정의 과정은 적법절차(due process)와는 거리가 먼, 마치 어둠의 자식들이 야밤에 모여 장물을 나누어 가지는 으슥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정당은 정당원의 것이기는 하나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책임 있는 정치집단이다. 정당구성원의 입신양명이나 일신의 영달을 위한 이익집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충대충 동물농장처럼 운영되어서도 안 되고, 범죄조직과 흡사하게 운영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국리민복의 방향을 잡아 그 방법론을 찾아 나가는 정치결사체이어야 한다.

정당의 거버넌스는 행정부처나 기업보다 훨씬 더 민주적 구조이어야 한다. 왜냐 하면 정당은 민주주의의 본산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기업이나 행정부처에서 ESG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원칙을 정당에 액면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 원칙의 본질(목적)은 정당에서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정당민주주의는 입법부는 물론 사회전반 나아가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을 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운영의 전과정이 고도의 법치와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사람 중심의 정당운영이나 사람 중심의 이합집산은 정당발전의 퇴행을 조장할 뿐이다. 거대 양당이나 군소정당 할 것 없이 위인설정당(爲人設政黨)이어서는 안 되며, 외부 이익집단과 야합하여 국민전체의 이익이 아닌 부정한 비리집단과의 연합(?)을 통한 부패사슬에서 기생하는 파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천제도의 민주화이다. 정당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의 형평이 주어져야 하고, 그들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당내부에서의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질서구축이 필요하다.

정당의 대주주(지배세력)가 전횡을 통해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자기 사람을 내려 꽂는 식의 공천이라면 그 누구도 선량한 정치행위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권력자의 눈치만 볼 뿐 국민의 이익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공천에만 목을 메다 보니 의정활동은 국익 아닌 극히 사익추구로 흐르게 되고, 결국 정당민주화는 물 건너가고 패거리집단에서의 생존전략만을 모색하면서 구명에 몰두한다면 무슨 정당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가 담보될 수 있단 말인가?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천제도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과 자연스러운 정치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개혁, 정치발전, 정당발전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도 지방선거의 경우와 같이 계속 재임을 3기로 제한하는 제도 등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천과정에서의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공천심사위원회의 합리적 구성과 운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법치주의를 위한 정당의 기본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결국 정당의 정체성 확립과 정당구성원의 의식개혁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의 소선거구제하에서의 정당공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셋째,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한 정당의 개혁을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가 공명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의 민주적 의식개혁은 물론이고 선거관리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천을 공정하게 하여 가장 적합한 공직후보자를 내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의 확보가 필요하다.

공천은 그 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에 적합한 인물이 아닌 주권자인 국민(선거구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공의로운 인물이 선발될 수 있는 지표에 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현행의 소선거구제보다 중대선거구제가 공천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후보자를 가려내서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표의 등가성 등을 고려한 선거구제의 적정한 배치라든지, 정치신인, 청년 여성, 약자 등에게 정치입문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등의 통섭적 선거제도 개혁입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천과정에서 금권이나 지연, 혈연, 학연 등 능력이나 재능과 무관한 기준에 의해 공천을 거머쥐는 넌센스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질서화해야 한다.

선거관리의 엄정성과 관련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표도둑을 자행할 수 있도록 허술한 선거관리시스템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거의 후유증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정하고 엄정한 선거관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배가하고, 투개표 기기상의 오류를 의심할 수 없도록 명명백백하게 논증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선거권자의 의식개혁을 통한 정당민주화의 실현이다. 우리나라 선거 현실은 정당별 독과점적 지위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기반 중심정당이 대부분이다. 선거결과를 볼 필요도 없이 특정 정당이 절대우세를 점하는 지역은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으로 사실상 선거문화의 퇴보를 가져오게 된다.

선거는 통합의 선거, 화합의 선거, 승복의 선거이어야지, 갈등과 분열을 고착화하는 선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선거권자는 주인의식을 갖고 정당의 정강정책과 후보자의 능력 등을 고려하여 냉정하게 정당과 후보를 평가하는 투표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 선거현장은 그렇지 않다. 정당의 이념이나 목적에 따라 모인 정치집단으로서의 정당이 거의 없으므로, 선거권자의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투표행위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 선거환경이다. 선거제도 및 의식 전반에 관한 통섭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으로부터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이 큰 정치권의 대국민 신뢰증진을 위해서는 정치결사체인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통한 정치발전을 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당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공천의 공정성 확보, 선거구제의 손질과 선거관리제도의 공명성 확보를 통한 선거제도의 개혁, 선거권자의 투표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정당의 건전한 발전을 통한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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