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교육부의 '시민' 교과목 신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관리자 승인 2018.12.14 15:08 의견 0

 
[윤리위원장=권영출]지난 13일 교육부가 초·중·고등학교에서 오는 2022년부터 이른바 '시민' 과목을 도입해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부 신문에서는 유럽의 사례를 인용하여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30여년을 일선교육현장에 있으면서 교육운동을 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실패할 것이다.’라고 우려한다.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인용하자면, 수국의 꽃 색깔은 수국이 심어진 흙의 성분과 환경에 따라 바뀐다고 한다. 즉 흙에 알루미늄 성분이 많아 산성인 경우, 알루미늄 이온과 안토시아닌이 결합하여 푸른색의 꽃이 피고, 흙에 알루미늄 성분이 적어 염기성인 경우는 붉은색 꽃을 피운다고 한다. 유럽이라는 토양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긍정적 결과를 얻을 것이라 짐작한다면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미 열린 교육의 광풍이 입증한 바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유럽의 어떤 사회와 견주어도 구별될 만큼 주체성과 문화적 역사적 차별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초중등학생들의 게임 중독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임 토론회에서 어떤 발표자가 ‘게임’이라는 과목을 만들어서 학교에서 가르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듣는 이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학교에서 ‘게임’이라는 교과목을 만들어서 가르치는 순간, 학생들은 게임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순간, 살아있는 지식이 화석처럼 굳어져 버리고 유연성과 시의성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교과목으로 가르치려는 순간 다이나믹한 게임조차 지루하고 고루한 지식으로 전락하여 학생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란 뜻이다. 빠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마스터한 것을 교과서에 실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섭렵하고 지나간 것을 교과시간에 배우는데 누가 흥미를 갖겠는가 ? 그동안 광고시장에서 ‘15초’가 수 십 년간의 정석으로 알려져 왔다. 적어도 15초 정도는 눈을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에, 간단명료하면서 감성적인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15초 동안 인내심을 갖고 봐주는 소비자가 점 점 줄어들면서 7초, 8초짜리 광고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영상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에게 교과서는 고대 시대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처럼 보일 뿐이다.
 
2022년에 초중등학교에 다닐 학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TV와 스마트폰을 접한 세대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교육부 관료들처럼 텍스트 세대가 아니다. 교육부는 2016년 융합인재교육(STEAM) 기본 계획을 통해, 꿈과 끼, 창의·융합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선도학교도 만들고 롤 모델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이나 기획은 전혀 딴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 ‘IT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초중학교에 컴퓨터과목을 신설하고, 선택하도록 종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서 흐지부지 교과목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내용을 수업시간에 지도하도록 편성되어 있으니, 교사들은 답답하고 아이들은 결국 IT 분야를 지겨운 것으로 인식해 버렸다. 그 당시에도 담당 교사들이 입만 열면, 컴퓨터 교과서 오래 못 간다고 예언을 했다.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기존의 국어, 사회, 과학,  체육 등 모두 교과에서 자연스럽게 녹여서 스며들게 해야지 과목으로 신설한다고 하지만, 그 내용물은 따끈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대산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조각이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교육과정과 지도서가 따라 붙는데, 장학사들은 일선학교 교사들이 그 지침대로 가르치는지 확인할 것이다. 광고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것처럼, 아이들의 지식과 사고도 초스피드로 향상되고 있는데, 고리타분한 덕목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교수요목이 제시되는 순간 책상에 엎어지게 만들 뿐이다.
 
닥치고 지도서에 나와 있는 데로 앵무새처럼 가르쳐야 탈이 없는 교사들은 고통스럽고, 아이들은 학교를 지겨운 장소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일부 교과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과서는 시대적 수명을 다 한지 오래다. 매일 새로운 교과서가 교사들의 창의성을 통과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마치 이른 아침 베이커리 빵집에서 갓 나온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처럼 군침이 돌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소위 전문가라는 교수와 교사들이 연구하여 책으로 탄생하는 순간 이미 고대 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수준과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매일 매일 지도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교사가 창의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학생들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교대와 사대를 가기 위해 수능 1등급을 통과했던 교사들이 학교에 오는 순간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다. 교육부가 주는 자료, 교과서 출판사가 제공하는 자료만 보고 가르치면 되는데, 무슨 생각이 필요하고, 고민이 필요할까 ? 밤새 술을 마시고도 아침에 교과서와 지도서만 펼치면 가르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하는 교사의 고백을 들어본 적도 있다. 한 해만 고생하면 5-6년, 길면 7-8년간 달달 외운 것을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김상곤 교육부총리 시절에 새롭게 추진했던 일들이 대부분 혼란과 실패로 종결되었다. 결국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맥없이 주저앉게 만들어 버렸다. 그분의 사퇴로 뭐가 달라졌는가 ? 그간의 역사를 복기해 볼 때, 교육부가 뭔가 새로운 것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때 고통도 적었다. 교육부는 학교와 교사를 감시, 감독하는 상급기관이 아니라, 낮은 자세로 일선학교를 지원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는 한,  대한민국 교육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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