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제41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숭실OB남성합창단'
[선데이타임즈=권영출 기자]창단 52주년을 맞은 ‘숭실OB남성합창단’이 9월 30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친 제41회 정기연주회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한국 아마추어 합창계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 감동의 무대였다. 70여 명의 합창단원들이 선사한 깊이 있는 하모니는 500여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고, 반세기를 넘나드는 전통의 무게와 음악적 완성도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특별한 밤이었다.
⏵전통과 열정이 빚어낸 완벽한 하모니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무대 위로 나타난 70명의 합창단원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0대를 넘나들지만, 첫 곡이 시작되는 순간 객석에는 놀라움의 탄성이 흘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깊은 울림이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연세대 음대 관현악과 명예교수인 최승한 지휘자의 섬세한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합창단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악기처럼 보였다. 특히 같은 연대 음대 출신으로 현재 남산교회 오르가니스트를 맡고 있는 성효식의 반주는 합창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며 음악적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이날 연주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합창단원들이 독일어 가사 8곡 이상을 모두 외워서 불렀다는 점이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중장년인 이들이 원어 발음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독일 리트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정확한 발음은 전문 성악가들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각 성부 간의 균형은 물론, 다이내믹의 변화와 템포 조절에서도 오랜 경험이 축적된 앙상블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앵콜 요청 속에서 울려퍼진 기도의 선율
마지막 곡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앵콜! 앵콜!"을 외치는 500여 관객들의 요청에 응해 합창단이 선보인 앵콜곡은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였다.
이 순간 콘서트홀은 고요 속에서도 깊은 울림이 가득했다. 신앙심을 자극하는 하모니가 듣는 이들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며, 단순한 음악적 감동을 넘어 영적인 체험을 선사했다.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이 특별한 순간에 깊이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김대웅 단장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 "숭실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동문들이 모여 합창의 하모니를 만든 지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최승한 지휘자, 성효식 반주자 그리고 70명의 단원들의 노력이 오늘 성공적인 연주회로 결실을 거두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합창단에 보내준 과분한 사랑과 관심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단순히 취미로 시작된 합창단이 아니라, 모교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반세기 이상을 이어온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숭실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면서도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로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중후함 속에 담긴 세월의 깊이
이날 공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50대, 60대, 70대에 이르는 합창단원들의 목소리에서 세월의 흔적보다는 오히려 깊은 중후함과 성숙미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젊은 성악도들의 기술적 완성도와는 다른, 인생의 경험이 녹아든 진정성 있는 음성이었다.
각 성부의 조화도 인상적이었다. 제1테너 20명이 만들어내는 밝고 청량한 선율선, 제2테너 17명의 따뜻한 중간 음역, 제1베이스 15명의 든든한 저음 받침, 그리고 제2베이스 15명의 깊고 웅장한 최저음까지, 70여명이 만들어내는 사성부 하모니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숭실OB남성합창단’의 이번 정기연주회는 한국 아마추어 합창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여가 활동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음악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이 정도 수준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합창 문화의 저변 확대에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독일어 원곡으로 부른 클래식 레퍼토리들은 우리나라 아마추어 합창단의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은 프로 못지않은 예술적 태도라 할 만하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
창단 52주년을 맞은 ‘숭실OB남성합창단’이 보여준 이날의 감동적인 무대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합창단원들의 나이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들이 쌓아온 음악적 경험과 전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이들이 후배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은 단순한 노래 실력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는 공동체 정신과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일 것이다. ‘숭실’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의 하모니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음악은 나이를 초월한다. ‘숭실OB남성합창단’이 증명한 것처럼, 진정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면 언제든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다. 이들의 다음 공연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